(문화뉴스 이동형 기자) KBS 대형 사극을 연출해온 신창석 감독이 베트남 국민영웅 쩐흥다오 장군을 소재로 한 한국-베트남 합작 블록버스터 영화 연출을 맡는다.
지난 10월 22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치민 랜드마크 81 호텔에서 열린 ‘CICON ASEAN5 2025’ 행사에서 한-베 합작 프로젝트 ‘쩐흥다오(Trần Hưng Đạo)’ 제작발표회가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AI 시대, 한국-ASEAN 경제혁신 전략’을 주제로 열린 국제 포럼 프로그램의 하나로, 양국 정·재계 및 콘텐츠 산업 관계자 약 1,000여 명이 참석했다.
프로젝트는 한국 SCK엔터테인먼트가 총괄하며, 총 제작비는 약 300억 원 규모다. 극장용 영화와 함께 125부작 드라마까지 동시 제작하는 형태다. 2026년 5월 촬영을 시작해 2027년 2월 개봉할 계획이다.
제작발표회에는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명성황후》 등을 연출한 신창석 감독을 비롯해 《추노》의 곽정환 감독,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백홍종 촬영감독, 베트남 스타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해온 연기 디렉터 박리디아(Park Lydia) 연세대 영화학 교수, 람치띠엔(Lam Chi Thien) TodayTV 회장, 당쨘 쾅(Dang Tran Quang) 초치민시 뉴스센터 보도본부장 등 한-베 영상산업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쩐흥다오 장군은 13세기 베트남을 침략한 몽골 50만 대군을 세 차례 격퇴한 베트남 국민적 영웅으로 한국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된다.

다음은 신창석 감독 일문일답
▷ 감독님께서 이번 베트남 합작 블록버스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요? 단순 제작을 넘어 왜 지금 베트남인가에 대한 감독님의 관점이 궁금합니다.
“한국이 한류의 중심이라면, 베트남은 동남아 문화의 심장입니다. 베트남은 젊고 역동적이며, 자국의 역사와 영웅을 영화로 재해석하려는 열망이 매우 강합니다. 저는 그 에너지를 느꼈고, 그 중심에서 함께 만드는 역사를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영화 한 편이 아니라, 한–베 문화동맹의 상징적인 작품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 영화 주제를 쩐흥다오 장군으로 정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쩐흥다오 장군은 베트남에서 민족의 혼입니다. 그는 세 번의 몽골 침략을 모두 막아낸 인물로, 단순한 장수를 넘어 민중의 지도자였습니다. 한국의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서 나라를 지켰다면, 쩐흥다오 장군은 강과 대지를 지킨 영웅이죠. 역사적 인물의 서사를 영화로 옮기며, 전쟁보다 더 큰 희생과 용기, 그리고 통합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 베트남의 쩐흥다오 장군은 한국의 이순신과 비교되곤 한다고 들었습니다. 감독님의 시점에서 두 영웅이 가진 리더십과 서사의 결정적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두 분 모두 나라를 위해 자신을 버린 성인형 리더입니다. 이순신은 고독한 결단형 리더였다면, 쩐흥다오 장군은 공동체적 리더십의 상징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전쟁 속에서도 백성과 장수, 왕까지 하나로 묶어내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그 점이 지금의 베트남과도 닮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차이를 중심으로 동양의 리더십 정신을 세계적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 K-드라마형 스토리텔링과 베트남의 영웅 서사가 만날 때, 감독님이 가장 중점적으로 바꾸거나 확장하려는 감정 구조는 무엇인가요?
“한국 드라마는 감정의 입체성과 서사의 리듬감이 강합니다. 반면 베트남 전통 서사는 의리와 명예 중심의 직선적인 구조죠. 저는 여기에 인간적 고뇌와 선택의 감정을 더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보다 인간의 내면을 중심으로 풀어내며, 베트남 영웅 서사가 K-드라마의 감정선과 만나는 지점을 만들고 있습니다. 관객이 전쟁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감동받는 영화, 그것이 제 목표입니다.”
“쩐흥다오 장군의 묘 앞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합장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신념으로 존재하고 있더군요. 또 베트남의 전통 악기와 무예, 복식의 디테일이 상상 이상으로 섬세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그 정성과 자부심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 정신을 최대한 진정성 있게 재현하려고 합니다.”
▷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 수출형 한류가 아니라 공동 창작 모델입니다. 진짜 협력과 형식적인 협력을 가르는 기준이 감독님께는 무엇인가요?
“진짜 협력이란,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주도하고 베트남이 따르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는 이번 작품에서 모든 스탭 회의를 양국 공동어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본, 음악, 미술, 의상까지 현지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토론하며 만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 창작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 베트남 배우들이 주요 출연진으로 등장한다고 하셨는데 베트남 배우의 연기력, 배우로서의 덕목 등은 어떻게 보셨나요?
“베트남 배우들은 감정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 진심이 깊습니다. 특히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나라라 그런지, 눈빛 하나에도 조상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집니다. 기술적인 완벽함보다 진정성 있는 감정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아시아 무대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배우들이라고 봅니다.”
▷ 베트남 영화 시장에 대해 보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베트남 영화 시장은 지금 막 황금기를 향해 가는 중입니다. 관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젊은 세대의 자부심이 영화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영화 산업적 기반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그만큼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지금의 베트남은 1990년대 한국 영화계의 열정과 매우 닮았습니다.”
▷ 감독님은 KBS에서 굵직한 역사극과 대형 드라마들을 기획·제작해오셨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님 필모그래피의 어떤 경험을 가장 강하게 투영하고 계신가요?
“저는 늘 ‘사람이 곧 서사다’라는 철학으로 작품을 만들어왔습니다. <무인시대>, <천추태후>, <신사와 아가씨> 같은 작품들도 결국은 권력보다 인간의 내면과 관계를 다룬 드라마였죠. 이번 영화에서도 대규모 전쟁보다, 그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들의 선택과 믿음을 중점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제 모든 작품의 정점이 이 영화로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한국 시청자와 베트남 시청자에게 각각 어떤 감정과 메시지로 남길 수 있기를 바라시나요?
“한국 관객에게는 이웃 나라 베트남의 역사와 자존심을, 베트남 관객에게는 자신들의 위대한 정신과 문화의 재발견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에게 함께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전쟁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사랑과 용서의 이야기입니다. 그 감동이 국경을 넘어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문화뉴스 / 이동형 기자 news06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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